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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식 이야기 :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랑한 한상차림



흥미로운 한식이야기 세 가지. 우리가 먹는 한식은 왜 하필 이런 방식으로 먹게 된걸까요?

 


한식 상차림의 기본은 언제나 밥+국+반찬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3국은 농경문화가 중심인 나라로, 끼니 때마다 먹는 음식을 주식과 부식으로 구분합니다. 주식은 배를 불리기 위한 곡물요리, 부식은 간을 맞춘 고기,생선,채소로 이뤄지죠. 특히 한국은 국→밥→반찬 순서가 이어지며 두 가지 음식이 입 안에서 섞이는 고유의 식문화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 사람들은 밥+국+반찬을 식사의 기본으로 여겼고, 이런 상차림으로 먹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보리와 쌀을 거두기 쉬운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밀보다 밥을 선호하는 탄수화물 식단을 낳았고, 밥이 식문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습니다. 해서 영양학적으로 탄수화물+비탄수화물의 조화가 한식의 기본 뼈대인 셈이죠. 
 
 
 
 


특히 한국에서 국요리가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건, 고대 중국의 성현을 존경하는 조선시대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청동기 솥에 끓인 동물을 제사에 바쳤는데, 이것이 하나의 의례로 정착하며, 국물요리 또한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은 것이죠. 고대 중국을 롤모델로 삼는 유교, 그런 유교를 존중했던 조선에 국요리는 하나의 규범이 되어 한식문화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됩니다.
 
 
 
 

 

조선시대가 사랑한 생활식탁, 소반小盤

소반은 그 이름처럼 크기가 작고 들고 나르기 좋은 식탁입니다. 생김새에 따라 둥근 소반, 사각 소반으로 구분했고,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 등 지역이름을 붙여 특징을 구분하는 1인분 식탁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좋은 나무로 만든 고품격 소반은 숙련된 솜씨를 지닌 소수의 장인만이 만들 수 있어 왕실가문이나 양반가를 중심으로 인기가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소반을 처음으로 쓴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내려오는 기록이 불분명하지만, 고려시대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2009년에 충청도 태안 앞바다에 가라앉았던 고려시대 배에서 넓은 대나무판에 짧은 다리가 달라붙은 식탁이 발견됐거든요. 본격적인 사용은 조선시대부터 이뤄집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온기어린 음식을 선호했습니다. 따뜻한 밥과 뜨끈한 국을 담아내면 너무 뜨거워, 그릇을 상 위에 둔 채로 식사를 해야 했죠. 좌식생활을 했던 생활습관에 맞춰 다리가 긴 소반이 유행하기도 했죠. 18세기 후반이 되면, 계층을 가리지 않고 쓰는 모두의 식탁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소반은 유교식 예법에도 알맞았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예법기록이 적힌 <예기>와 <주례>에는 '주인과 손님에게 독상을 차려내야 한다'는 조언이 전해집니다. 1인분 상차림을 얹는 소반은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 술을 마셔 관계를 맺는 자리의 에티켓이 됐죠. 양반가에서 서민계층에 이르기까지, 소반을 쓰는 1인 상차림은 조선후기 식문화의 기본이 됩니다.



 



그릇 하나하나에 새긴 이름과 저마다의 쓰임새
 
뚜껑이 있는 그릇은 '합(盒)'이라 불렀고, 여성이 쓰는 놋쇠밥그릇은 '바리', 김치나 찌개같은 국물반찬을 담는 그릇은 '보시기', 장류를 담는 그릇은 '종지'.
 
양반가에서는 밥그릇으로 놋쇠밥그릇인 주발과 합(盒)'을 많이 썼습니다. 주발은 보온력이 좋아 밥이 천천히 식는 겨울에 즐겨썼다고 전해집니다. 합은 밥과 뚜껑 사이의 빈 틈으로 더운 김이 순환해서 밥이 쉽게 마르지 않는 장점이 있었죠. 

국그릇은 탕기 혹은 갱기라고 불렸는데요. 밥그릇과 국그릇은 모양과 크기를 거의 비슷하게 맞춰 내는 게 양반가 국그릇의 특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숭늉이나 국수, 만둣국 따위를 담는 대접과 함께 놋그릇과 사기그릇을 상황에 알맞게 사용했죠.



 


사람들은 국물이 있는 반찬과 마른 반찬을 구분해 그릇을 사용했습니다. 보시기는 반찬을 담는 그릇으로, 안이 오목하게 파인 사기그릇이 일반적으로 쓰였습니다. 보시기는 사발보다 작고 종지보다는 큰 중간 크기의 그릇으로, 익힌 음식이나 국물을 낸 김치를 담아냈죠.

또 전통상차림의 핵심반찬인 장류는 종지 그릇에 따로 올라갑니다. 19세기 후반의 한글 요리서 <시의전서><음식방문>에 따르면 오첩 반상에는 초장과 간장을 담은 종지 2개, 칠첩 이상에는 겨자를 더한 종지 3개가 올라갔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잘 구분하지 않지만, 발효음식을 늘 가까이 여겼던 오랜 식문화의 흔적입니다.

한국어는 그릇을 섬세하게 구분합니다. 상차림의 가짓수가 많은 한식문화의 흔적이죠. 말에는 삶이 반영됩니다. 문화는 말을 구분해 섬세한 단어로 변합니다. 조선후기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각 지역의 종갓집 전통상차림이나 문헌기록을 통해 그릇의 자세한 쓰임새가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nampahouse

나주 종갓집 200년 역사를 음식으로 전해드립니다. 남파고택 공식 인스타그램을 팔로잉하고 다양한 정보를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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